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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한국 고전문학

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최척전/주생전

by 서연비람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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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시공을 초월해서 독자에게 꾸준히 읽히는 주제-사랑
최성윤 교수의 재미있고 깊이 있는 해설로 만나는
두 편의 사랑 이야기 「최척전」과 「주생전」


서연비람에서는 우리 고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문학적 상상력을 기르고, 문학이 주는 감동과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여 <서연비람 고전 문학 전집>을 출간하고 있다. <서연비람 고전 문학 전집>은 청소년들에게는 학습서로, 일반인에게는 교양서로 읽힐 수 있게 우리 고전을 쉽고도 재미있게 풀어내었다. <서연비람 고전 문학 전집> 여섯 번째 작품으로 『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최척전/주생전』에서는 조위한의 「최척전」과 권필의 「주생전」을 한데 묶어 출간하였다. 

이 두 작품은 16세기 후반이라는, 비슷한 연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경험한 비극적 전란의 대표 격인 임진왜란이 작품 내용에 개입되어 있어 조위한과 권필이라는 두 작가가 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작중 인물들의 삶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비교해 가며 읽으면 좋다.

「최척전」은 조위한이 쓴 한문 소설이다. 주인공 최척과 옥영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란으로 인한 가족의 이산과 기적적인 재회를 그렸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한 당시 민중 계층의 희생, 가족들의 이산의 아픔 등이 사실적으로 나타나 있다. 「최척전」은 현재 8편의 한문 필사본, 1편의 국문 필사본이 남아 전한다. 이 소설은 1621년(광해군 13년) 윤 2월에 조위한이 임진왜란을 소재 및 배경으로 하여 창작한 작품이다. 내용의 성격상 애정소설로도, 전기 소설(傳奇小說)로도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피란 소설로서 「기우록(奇遇錄)」이라고도 부른다. ‘기우록’이란 ‘기이한 만남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주생전」은 권필이 쓴 한문 소설이다. 필사본으로 전하며 작품의 말미에 지은이가 1593년 봄에 송도에 갔다가 역관(驛館)에서 이 작품의 주인공인 주생을 만나 필담(筆談)으로 그의 행적을 듣고 돌아와 서술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생전」은 한 젊은 선비와 두 여인 사이에서 이루어진 비극적인 사랑을 전기 형식(傳記形式)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고전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비현실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배경, 사건, 인물 등의 측면에서 현실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요 인물들의 고독과 사랑, 비극적 좌절과 슬픔을 표현하는 많은 서정시가 삽입되어 있는 것도 이 작품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는 우수로 차 있다. 

「최척전」을 쓴 조위한과 「주생전」을 쓴 권필은 그들의 나이 20대 중반에 임진왜란의 발발을 보았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가장 첨예할 시기에 전쟁을 경험하고, 그것이 백성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란이 작품 속에 개입하는 양상은 사뭇 다르다.
조위한의 「최척전」이 1592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을 거쳐 후금이 명나라를 침공하던 17세기 전반까지 30년에 가까운 시기를 다루는 데 반해, 권필의 「주생전」은 임진왜란의 발발이 작품 결말 부분에 제시되고, 그 이듬해인 1593년에 쓰였다고 밝히고 있다.
「최척전」이 전쟁의 직접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인의 이야기라면, 「주생전」은 전쟁의 중심에서는 약간 비껴나 있는 중국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이다.
따라서 「최척전」의 전쟁이 인물들의 생애 전반을 지배하는 중심 서사의 축으로 작용하는 데 비해, 「주생전」의 전쟁은 인물들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중심 서사를 보조하고, 그것을 운명적으로 마무리하는 계기로 나타난다.
「최척전」과 「주생전」이 당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가탁(어떤 사물을 빌려 감정이나 사상 따위를 표현하는 일)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도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결말 부분에 직접 등장하여 작품의 주인공을 만났다고 진술하는 수법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요약하여 전한다는 작가의 말은 독자에게 이 작품의 서사가 실제 있었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일종의 현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가탁의 형식을 활용한 것 외에도 「최척전」과 「주생전」은 당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사실적인 작법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당대의 현실이 빚어 낸 인물들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려는 작가 의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이야기의 공통된 주제는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지금이나 몇 백 년 전이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척, 옥영, 주생, 배도, 선화 등 그 시대 젊은이들의 설렘과 안타까움을 현대 독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도 그들처럼 사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과 다름없는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척전」과 신소설 「혈의누」,  「주생전」과 현대소설 「무정」과 비교하면서 이 두 작품이 후대 작품들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될 것이다.


목차

차례

책머리에
「최척전」과 「주생전」을 읽기 전에

「최척전」 
쪽지로 전한 마음
지키지 못한 약속
너무나 짧았던 행복
뿔뿔이 흩어진 가족
만리타향에서의 재회
꿈에 그리던 조선으로 돌아오다
돛단배 하나로 망망대해를 건너
마침내 한곳에 모인 가족

작품 해설
「최척전」 꼼꼼히 들여다보기

「주생전」 
바람이 부는 대로
배도와의 만남
조약돌과 옥구슬
옥구슬을 훔치다
연적이 된 두 여인
배도를 묻고 선화를 떠나다
부치지 못한 편지
송도에서 만난 주생

작품 해설
「주생전」 꼼꼼히 들여다보기
「최척전」과 「주생전」에 대하여


저자 소개

조위한 지음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김덕령을 따라 종군하였다.
1609년(광해군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주부, 감찰 등을 지냈다.
1613년 계축옥사 때 파직 당했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벼슬길에 올랐다.
1624년(인조 2년)에는 이괄의 난을 토벌하는 데 참여하여 서울을 지켰다.
80세에 자헌대부에 오르고 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글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해학에도 능하였다.
가사 「유민탄」을 지었다 하나 현재 전하지 않고,
저서 「현곡집」과 「기행록」 등이 남아 있다.

권필 지음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정철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글재주가 뛰어났으나 성격이 자유분방하여 벼슬을 하지 않고 제자 양성에 힘썼다. 
임진왜란 때 강경한 주전론을 주장했다. 
광해군의 비 류씨의 동생 등 외척의 방종을 비난하는 「궁류시」를 지어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귀양가는 길에 행인들이 그를 동정하는 술을 주었는데, 폭음한 끝에 그 이튿날 44세로 세상을 떠났다.
자가 성찰을 통한 울분과 갈등을 토로하고, 잘못된 사회상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저서로 「석주집」과 한문 소설 「주생전」이 전한다.

최성윤 엮음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고,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문화일보 추계문예공모 시 부문에 당선되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 교수 및 상지대학교 교양 대학 조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고려대학교와 군산대학교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계몽과 통속의 소설사』, 『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구운몽』, 『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허생전/양반전』, 『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최척전/주생전』, 『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운영전/영영전』 가 있으며
공저로는 『김유정의 귀환』, 『한국학 사전의 편찬의 현황』, 『김유정과 동시대 문학 연구』, 『군산의 근대 풍경:역사와 문화』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최척전 - 쪽지로 전한 마음 p.28~18

수업을 마치고 물러나온 최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푸른옷을 입은 계집아이 하나가 문밖에 서 있다가 냉큼 뒤를 따랐다. 그리고 최척의 등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비님,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최척은 이미 쪽지에 적힌 시를 보고 한바탕 마음이 들떴던 터인지라 왠지 모를 기대감에 휩싸였다. 필시 이 계집아이가 편지의 주인과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으리라는 짐작이 들었던 것이다. 최척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쩐지 얼굴이 익숙한 것이 스승님 댁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하구나. 긴한 말이라면 길 위에서 하기 어려울 테니 일단 나를 따라
오너라.”
최척은 계집아이를 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자세한 사정을 묻자 아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이 낭자의 여종 춘생이라고 합니다. 아씨께서 저더러 선비님의 화답시를 받아 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최척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는 정 생원 댁에 딸린 여종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왜 그 댁의 아씨를 ‘정 낭자’가 아니라 ‘이 낭자’라고 하는 것이냐?”
춘생은 차근차근 대답했다. 
“제 주인댁은 본래 서울 숭례문 밖의 청파리에 있었습니다. 주인 어르신께서 일찍 돌아가신 후에 홀로 남으신 심씨 마님이 따님과 더불어 살고 계셨지요. 따님의 이름은 옥영(玉英)이라고 합니다. 좀 전에 시를 던진 분이 바로 옥영 낭자였답니다. 작년에 난리를 피해 강화도로 피란을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나주 근처의 회진†이라는 고을로 갔지요. 다시 올 가을에 회진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이 댁 주인이신 정 생원 어른께서 저희 마님의 친척이시라 잘 대해 주십니다. 단지 걸리는 것이라고는 지금 아씨의 혼처를 구하고 있는데 마땅한 신랑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이지요.”

최척전 - 작품 해설 p.130~132

1. 최척 일가의 수난사, 네 나라의 국경을 넘나드는 광활한 상상력

「최척전」은 조선,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네 나라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매우 이채로운 작품이다. 게다가 각 지역에서 제각각 전개된 인물들의 삶이 삼십 년에 가까운 시간의 흐름과 특별한 공백 없이 촘촘하게 맞물려 있다. 웬만큼 조심성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고전 소설에서 연대와 시간의 착오는 흔히 발생하는 오류이다. 그러나 「최척전」의 서사는 철저히 계산된 시간표 아래에서 전개된다. 아마도 그것은 전쟁 등선명한 역사적 사건이 부분 부분의 변곡점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시아버지와 장모, 형과 아우가 네 나라로 흩어져 삼십 년 가까이 만나지 못하고 서글프게 서로를 그리워하다니. 적의 땅에서 살기를 도모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마침내는 단란한 가정으로 모여 모든 소원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만 이룰 수 있는 일이겠는가? 필시 하늘과 땅이 그들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하여 이토록 기이한 일을 이루어 준 것이리라. 하늘도 한 여인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지 못하는구나!

조선 백성으로 조선 땅에 살던 본래의 시공간을 제외하면 전쟁에 의해 헤어진 부부가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공간이 우선적으로 배경의 확장에 기여한다. 최척은 자발적으로 중국행을 결정하고, 옥영은 왜적에게 끌려 일본으로 가게 된다. 남은 가족은 천행으로 살아남아 조선에 머무른다. 중국과 일본에서 생활하던 부부는 우연히도 만 리 밖 바다를 건넌 이국땅에서 서로 만난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베트남인 ‘안남’ 땅이다. 

경자년(1600년) 봄이었다. 최척은 송우와 동행하여 장사꾼의 배를 타고 이곳저곳으로 다니다가 안남에 이르게 되었다. 마침 최척의 배가 정박해 있는 포구에는 일본 배 십여 척도 와서 머물고 있었다. 

사실 조선 내에서도 백 리 혹은 천 리를 자유롭게 다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시대였다.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리 민족은 객지 혹은 타향을 선천적으로 두려워하는 농경 사회인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인 최척과 옥영은 재회한 이후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최척의 임시 거주 공간인 중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곳이 마치 최종적 정착의 공간인 것처럼 둘째 아들을 낳고 길러서 며느리까지 얻는다. 며느리는 중국인이니 말하자면 국제결혼이다. 이후 최척이 명나라 군대의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첫째 아들을 만나 조선 땅으로 귀환하고, 옥영 또한 거친 바다를 항해한 끝에 조선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만난다. 물론 이렇게 짧은 요약으로는 그들이 겪은 일들이 얼마나 참혹하고 고통스러웠는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전체로 확장된 광활한 공간적 상상력과 30년 민족사를 장악하고 아우르는 통시적 역사의식은 「최척전」을 여러 고전 소설들 가운데 단연 이채롭게 만드는 뚜렷한 특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생전 - 조약돌과 옥구슬 p.172~173

다음 날 자리에서 일어난 주생은 전날 밤 배도의 방 근처에서 낯선 소리가 났던 것을 기억해냈다. 문득 궁금해진 주생은 배도에게 그 기이한 소리의 정체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지난밤에 배랑의 방 근처에서 사람 소리와 말 울음소리가 잠깐 들렸는데, 이내 사라지더군요. 혹시 누가 왔었소?”
배도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 물가에 붉은 대문이 우뚝 선 크고 화려한 저택이 있습니다. 거기가 바로 돌아가신 노 승상 댁입니다. 승상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그 부인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 하나와 딸 하나, 두 남매만을 데리고 외롭게 살고 있답니다. 노 승상 댁 부인은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노래와 춤으로 달래곤 하시지요. 그댁에서 저를 부르려고 말과 사람을 보냈던 것이랍니다.”
주생은 그제야 사람 소리와 함께 말 울음소리가 났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초저녁도 아니고 밤이 깊었는데 피곤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법이 있나?”
주생이 입을 쑥 내밀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자 배도는 그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났다.
“제 재주가 마음에 드신 게지요. 가끔씩은 늦은 밤에도 부르곤 하신답니다. 하지만 어제는 낭군님도 계시고 하니 제가 병을 핑계로 거절하였던 것이지요.”
배도는 자신의 일에 관심을 가져 주는 주생이 고마웠고, 주생은 대갓집 마님의 분부보다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해 주는 배도가 더없이 미더웠다. 이후로 주생은 배도에게 흠뻑 빠져 바깥세상의 일을 잊고 살았다. 날마다 배도와 함께 거문고를 연주하고 술을 마시며 둘만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주생전 - 작품해설 p.242~243

1. 주생이라는 청년, 풍운아(風雲兒) 혹은 바람둥이

주생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총명함으로 쉽게 선망의 대상이 된 인물이다. 주위의 평가는 물론이고 스스로도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 시험에 몇 번 실패한 이후 벼슬살이에 뜻이 없어 방랑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먹고사는 일에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되는 형편이었나 보다. 가진 돈을 털어 배를 사고, 장사할 물건을 마련하는 것으로 보아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는 아니다. 또한 가진 돈을 장사 밑천으로 다 써 버리더라도 자신의 능력과 수완으로 이후의 생계를 이어 나갈 자신이 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려는가?”
주생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겠지. 내 인생에 정처가 있겠는가?”
그렇게 친구와 작별하고 배로 돌아왔을 때는 날이 이미 저물어 주위가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주생은 배를 물 한가운데 풀어 놓은 채 삿대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방랑의 시작 직전에 찾아간 친구 나생과의 대화 부분이다.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듯이 나생 또한 주생처럼 재주 많은 선비이지만, 관계에 진출하지는 않은 인물인 것 같다. 나생이 주생의 정처를 묻자 주생은 바람 부는 대로 인생을 맡겨 버리겠다는 대답을 한다. 마치 유랑 혹은 방랑이 자신의 체질인 것처럼 말이다. 주생의 말대로 불어오는 바람과 물길에 맡긴 배는 마치 정처가 있었던 것처럼 그의 고향인 전당에 가 닿는다. 그리고 전당에서 옛 소꿉친구인, 지금은 기생이 된 배도를 만난다. 성숙한 여인으로 자라난 배도의 모습에 주생은 이성적인 이끌림을 경험한다. 그리고 헛된 약속 끝에 배도를 자신의 여자로 쟁취한다. 주생의 약속은 첫째 ‘배도를 배신하지 않을 것’, 둘째 ‘입신양명 후에 배도를 기생 신분에서 빼내어 줄 것’ 등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배도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도중 또 다른 여성에게 연정을 느끼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