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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인물/역사속 인물

[비람북스 인물시리즈] 흥선대원군 - 일세를 주름잡은 풍운아

by 서연비람 2024.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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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흥선 대원군 이하응은 한때 외척이 득세한 어지러운 세상에서 거렁뱅이 짓으로 목숨을 보존하기도 했지만 끝내 정권을 장악하여 망해가는 조선 후기 왕조를 당당히 재건한 개혁정치인이었다. 그는 나라를 부흥시키고 백성을 구제하려는 이념으로 호방하게 일세를 주름잡던 풍운아였으며 한 시대를 호령한 권력자였다.

오랫동안 권세를 누려오던 외척들을 몰아낸 후에 그는 신분의 귀천이나 파벌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혁신적인 인사행정을 펴나갔고, 국가기구를 과감히 재정비하여 왕권을 강화해나갔다. 문란한 삼정을 바로잡고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했으며 침략해오는 열강에 당당히 맞서기도 했으나 그가 치세하는 동안에 수많은 천주교도를 박해했다.


목차

머리말

1. 그대가 이 나라의 왕족이라고?
2. 말조심하여라. 새가 듣고 쥐가 들을라
3.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더라
4. 내가 가는 길이 왕도로다

소설 흥선 대원군 해설
흥선 대원군 연보
소설 흥선 대원군을 전후한 한국사 연표


저자 소개

채희문 지음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1957년 서울 출생
1987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중편소설 「철탑」 발표
198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병원」 당선
1995년 제5회 서라벌 문학상 신인상 수상
2020년 제9회 황순원작가상(소나기마을문학상) 수상
대표작 선집 『바람도 때론 슬프다』(2019년, 서연비람) 출간
창작집 『철탑』(1988년, 삼성출판사) 『검은 양복』(1991년, 현암사) 출간
엽편소설집 『발가락 사십 개를 부양하는 남자』(1991년, 문예마당) 출간
장편소설 『흑치』(1992년, 문예출판사), 『슬픈 시베리아』(1995년,현암사) 출간
동아출판사전집 한국소설문학대계에 중편소설 「철탑」, 「검은 양복」, 단편소설 「309.8킬로미터」, 「호각소리」 수록
『한국 현대문학 대사전』(서울대학교 출판부)에 수록


책 속으로

1. 그대가 이 나라의 왕족이라고? p.14~15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
그는 당시 신분으로서는 가장 높은 왕손, 더구나 정통파에 속하는 위풍당당한 지체였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억울하고 서글프다 못해 한 맺힌 사람 중의 하나였다. 여차하면 임금이 될 수 있는 고귀한 신분이었으나 웬일인지 그는 비렁뱅이처럼 행색이 초라했고 장안에서는 이미 주정뱅이요 망나니, 게다가 돈 떼먹기 잘하는 노름꾼으로 소문나 있었다. 더구나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문중인 이(李)씨 가문에 똥칠을 하기 일쑤여서 친척들 간에도 웬만한 이들은 그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조선은 엄연한 왕국이다. 왕국에서 흥선군으로 봉군되었으니 이하응은 주위로부터 대감이라 불리기에 마땅했다. 어쨌거나 왕족 아닌가. 원래 그토록 지체 높은 대감이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주위가 요란하기 짝이 없어야만 했다.

1. 그대가 이 나라의 왕족이라고?  p.26~27

그랬다. 변두리 술집에서 이렇게 망신을 당하는 편이 오히려 흥선의 계략을 성공으로 이끄는 수단이 되곤 했다. 그는 여태껏 어떤 자리에서건 간에 비렁뱅이나 파락호, 그리고 팔불출로 대접받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 않았던가. 그러지 않았다면 진즉에 도정이나 경평군 신세가 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근래에 정통파 왕손으로 일컬어지던 자라고 해야 ‘경평균 이세보’와 ‘도정 이하전’뿐이지 않았던가. 그들은 세도 정치하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기개를 굽히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던 왕손들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 경평균 이세보가 공연히 역모에 몰려 저 멀리 완도 옆에 있는 신지도로 유배를 당하더니, 얼마 전에는 그토록 당당하던 도정 이하전마저도 역모 누명을 쓰고야 말았던 것이다.
순조, 헌종, 철종에 이르는 60년 동안 정권을 잡고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안동 김씨 세도 정권은 ‘순조를 잘 보살펴 달라’는 정조의 유언을 받은 ‘김조순’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순조의 왕비, 즉 순원 왕후는 바로 김조순의 딸이었다.

1. 그대가 이 나라의 왕족이라고?  p.34~35

“아닐세, 다시 생각해 보니 주모에게 큰절이라도 올려야 쓰겠노라. 날씨도 제법 선선한데 무전취식하다가 매까지 맞으면 골병들지, 아무렴. 그러니 주모는 냉큼 이리 와 앉아서 내 큰절을 받으라.”
흥선은 주모에게 절을 하기 위해 일단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그가 일어서니 듣던 대로 키가 짜리몽땅했다. 어쩌느라 아직까지 도포도 벗어 걸지 않았는데 웬걸, 걸레처럼 낡은 도포 자락은 길이가 겨우 무릎에 닿을 정도로 짧았으니 누구라도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이를테면 걸레짝을 걸친 한 나라의 왕족이 서민들이나 들락거리는 술집에서 공짜로 술 몇 잔 얻어 마시려고 술집 아녀자에게 큰절을 올리겠다는 거였다. 누가 보더라도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1. 그대가 이 나라의 왕족이라고?  p.43

흥선은 화를 참을 수 없었으나 더 이상 뾰족한 수도 없었다. 엄청난 봉변을 당하여 사지가 욱신거렸어도 그는 오로지 아들만을 앞세운 채 묵묵히 집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봉군된 지체로서 발에 흙을 묻혀서는 안 되었다. 정일품 현록대부였으므로 평교자를 타고 앞뒤로 하인들을 거느려야 마땅했다. 그러나 지금은 구종, 별배는 고사하고 뒤를 따르는 하인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어린 명복이야말로 평교자나 교가에 태워 정중히 모셔야 마땅할 테지만, 그 역시 갈증을 참으며 터벅터벅 걸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쩌랴. 참자. 지금은 모든 서러움을 참아야 할 처지였다.

2. 말조심하여라. 새가 드고 쥐가 들을라 p.56

“웬 무뢰한이냐? 이놈, 냉큼 물러나지 못할까?”
누군가 이렇게 소리치는 중에 흥선은 힘을 바짝 주어 물에 젖은 발로 뱃전을 딛고 올라섰다. 어느새 허리춤까지 물에 젖어 있어서 뱃전을 타고 오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나 전주 이가, 이하응이라고 하오. 여기 잔치가 벌어졌다고 해서 술이나 얻어 마시려고 찾아왔소. 저 구석에 간장 종지처럼 엎어져 있을 테니, 자시다 남은 술이나 두어 잔 주시오.”
그와 때를 같이하여 복면을 뒤집어쓴 천희연, 안필주가 귀신같이 배로 다가와 배 뒤꼬리를 힘껏 밀어붙였다. 배가 스르륵 강 중심을 향하여 밀려 나갔으므로 호통을 치던 작자도 더 이상 그를 뭍으로 끌어낼 수 없었다. 흥선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배 안을 둘러보았다. 초파일 연등 걸리듯 걸려 있는 등불 때문에 배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대낮처럼 밝게 드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