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근대화 시기를 어느 때부터로 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당시의 주장 중 하나가 조선 철종 시기 즉 ‘홍경래 난’ 이후로 보자는 것이었는데 나도 이에 공감하는 바가 컸다. 그만큼 ‘홍경래 난’은 여타의 민란과 다른 성격을 가지면서전통 봉건사회에 깊은 파문을 던졌던 것이다
목차
머리말
1. 꿈꾸는 다복동
2. 떨쳐 일어나다
3. 정주성을 지켜라!
소설 홍경래 해설
홍경래 연보
소설 홍경래를 전후한 한국사 연표
저자 소개
최학 지음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1950년 경상북도 경산시 출생
경향신문 신춘문예 단편 소설 「폐광」 당선, 문단 등단
한국일보사 장편소설 공모 「서북풍」 당선
장편소설 『고변』 제22회 동리문학상 수상
우송정보대학, 우송대학교 교수, 고려대문인회 회장, 한국작가교수회 부회장 등 역임
현재 중국 남경효장대학 명예교수, 한중백주문화교류협회장
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그물의 눈』, 『손님』, 『식구들의 세월』 등
산문집 『시가 있는 간이역』
장편소설 『서북풍』, 『안개울음』, 『역류』, 『화담명월』, 『고변』, 미륵을 기다리며』, 등
중국 관련서 『중국백주기행』, 『니하오 난징』
책 속으로
1. 꿈꾸는 다복동 p.18~19
“참, 홍 지관은 왜 여태 얼굴을 보이지 않느냐?”
비로소 정질이 홍경래를 지목했다. 예측한 것처럼 매사냥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의심 많은 그가 사또 형을 대신해서 다복동 금점의 실상을 파악하러 온 것임이 분명했다.
“계시옵니다만 몸에 열이 있어서 출입을 삼가실 따름입니다.”
당황 않고 총각이 사정을 설명했다.
“가서 일러라. 상것들만 내보내지 말고 웬만하면 나오시어 수인사나 나누자고. 지관이 천하 명궁이란 소문도 익히 들었다고 전하게.”
정질이 빳빳이 고개를 쳐든 채 활터의 정자에 오르는 것을 보고 총각이 홍경래의 처소로 뛰어갔다.
“나더러 나오라지?”
예측했다는 듯이 의관을 갖추며 경래가 물었다.
“무슨 꿍꿍이속일까요?”
곁에 있던 우군칙이 홍경래를 쳐다봤다.
“꿩고기 나눠 먹자는 소리밖에 더 하겠습니까?”
“돈은 여기 총각에게 맡기겠습니다. 넉넉히 찔러주도록 하지요.”
“냉면도 한 상 차리지요.”
경래가 군칙을 마주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1. 꿈꾸는 다복동 p.26~27
가산 군수 정시는 특히 악랄하게 세금을 거둬들이고 공사를 많이 벌려서 백성들로부터 불만을 많이 샀다. 홍경래와 함께 거사를 꾸미는 데 앞장선 이희저의 뒤를 캐며 그로부터 돈을 받아내는데 크게 재미를 붙인 듯했다. 중국을 오가는 사신을 따라다니는 역졸 출신의 이희저는 사신들 몰래 하는 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 다복동에 광산을 세우고 인부들을 끌어모으는 자금 대부분도 이희저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런 이희저를 군수 정시가 꼼짝 못 하게 옥죄고 있으니 봉기군의 거사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선천 부사 김익순은 벌써 군교 최영길을 감옥에 잡아넣었다. 최영길은 봉기군에서 홍경래 다음 자리를 차지하는 우군칙의 사람이었다. 우군칙을 통해 뭔가 큰일을 꾸민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기에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실토할 것이 별로 없었다.
1. 꿈꾸는 다복동 p.31~32
홍경래가 이끄는 봉기군의 본거지가 바로 이 원수봉 아래에 있었다. 산기슭 여기저기 굴을 뚫어 금 캐는 광산의 흉내를 냈지만, 이는 눈속임이요 실제로는 봉기군의 집결지며 군사 훈련장이었다. 광꾼으로 위장한 군사들은 이곳저곳에 흩어진 초가에서 단체로 숙식하면서 맡은 바 일을 했다. 강으로 실려 온 곡식을 옮겨 굴속에 숨기는 일부터 임시로 만든 대장간에서 칼과 창을 만드는 일까지 모두 광꾼들의 몫이었다.
운산 촛대봉에 있던 금점을 다복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은 3년 전(1807년)부터였다. 촛대봉 광꾼 20여 명이 먼저 와서 광산을 파고 인부들이 묵을 움집들을 만들었다. 지지부진하던 광산 공사는 재작년(1809년) 여름 50명이 넘는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수봉 아래 황무지를 개간하여 논밭을 만들고 개울물을 막아 수차를 세우고 금싸라기를 찾아내는 부곽까지 만들면서 차츰 금점의 모습을 갖추어 갔던 것이다.
홍경래와 우군칙이 이곳 다복동을 봉기군의 본거지로 정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군사들을 숨기기 좋다는 점만은 아니었다. 대령강이 곁에 있어서 육지로 바다로 사람과 물자의 내왕이 편리하다는 이점 외에도 교통이 좋아서 안주, 평양으로 군사를 진군시키기 쉽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군사가 내달리면 하루 안에 평양성을 점령할 수 있고 또 하루를 더 달리면 서울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1. 꿈꾸는 다복동 p.35~37
평안도 차별의 쓰라린 경험을 몸소 겪은 이가 바로 홍경래였다. 그는 1771년 평안도 용강군 다미면에서 4형제의 셋째로 태어났다.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으로 평민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외숙부 유학권한테 글을 배웠다. 머리가 좋은 홍경래는 한 번 읽은 글은 절대 잊지 않았으며 열심히 읽은 책은 통째로 줄줄 외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
스물여섯 되던 해(1797년), 평양의 과거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였고 이듬해인 1798년에는 서울에서 치르는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시험에서 홍경래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실력이 문제 아니었다. 과거시험 자체가 이미 엉터리에 지나지 않았다. 시험도 치기 전에 이미 합격자가 누구누구라는 말이 나돌았다. 막상 합격자 발표를 보니 소문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세도가 대신들의 아들 이름들만 줄줄이 명단에 들어있었다. 책도 읽을 줄 모르는 그들을 위해 가난한 수재들이 대신 시험을 쳐주었으며 시험관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의 시험지를 보고 베끼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합격자가 발표된 뒤 떨어진 선비들이 떼를 지어 항의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홍경래도 맥이 풀려 화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한양을 떠나왔다.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널 적엔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두 번 다시 서울에 오는 일이 없다고 자신에게 맹세했다.
2. 떨쳐 일어나다 p.55~57
홍경래가 말에서 내려 천천히 단상에 올라갔다. 우군칙, 김사용이 그의 좌우에 섰으며 이희저와 김창시, 윤후검, 홍 총각 등이 그 뒤편에 버텨 섰다.
경래가 두 손을 쳐들자 환호하던 군사들이 창검을 내렸다. 한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1,500이 넘는 다복동 군사들과 방금 들어온 기마 장정들이 홍경래를 쳐다보았다. 미소 띤 얼굴로 무리를 내려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나 평서대원수 홍경래는 너희 창성, 벽동의 군사들을 환영한다. 너희가 조금 전 어둠을 뚫고 달려왔듯이 이 천지의 새벽은 너희의 말발굽을 쫓아 달려올 것이다. 뼈를 깎는 모진 바람도, 세상을 덮는 어둠도 너희의 말발굽을 막지 못한 것처럼 어느 누구도 너희의 진군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너희 50 군사를 얻은 것은 나한테 철갑기병 500을 얻은 것이요, 우리 관서의 형제 부모들에게는 5000의 구원자를 얻은 것이로다. 이제 남은 것은 너희의 힘과 재주를 다 해 관서의 악을 제거하고 천지의 광명을 되찾는 것뿐이로다. 신명을 다해 나를 위해 싸울 것이며 백골로도 만백성을 도울 것이로다. 하늘이 우리에게 때를 알려 주셨다. 손톱만큼도 두려워 말고 온 힘을 다해 싸울지어다. 결코 너희만 있는 것이 아니다. 5천의 다복동 정예 군사가 너희의 형제다. 서북 평안도 각 관아의 병영, 병참마다 숨은 십만의 동지가 우리의 진격 때마다 열렬히 반겨줄 것이며 만백성이 우리의 등을 밀어줄 것이다. 또한 만주 땅에 계시는 신인께서 철갑 기마 5만을 이끌고 와 우리를 도울 것이니 대세는 이미 끝장이 난 것과 다름이 없도다. 무엇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을 것인가!”
잠시 말을 끊고 경래가 숨을 골랐다.
“나 평서대원수 홍경래를 따르는 자에겐 끝없는 복과 영화가 있을 것이요, 명을 어기는 자에겐 서릿발 같은 군율이 기다릴 것이로다. 출격의 북이 울릴 때까지 마음껏 먹고 쉬어라!”
경래가 두 팔을 쳐들자 다시 산이 무너질 듯한 함성이 터졌다. 골짜기와 산이 “평서대원수!”의 외침으로 뒤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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