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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세계문학 명저

파도 -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

by 서연비람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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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파도』는 원래 미국에서 발간된 책이지만, 1980년대 중반 독일에서 출간된 이후 청소년 필독서로 활용되어 왔다. 그 결과 나치독일을 경험해보지 않은 현재 50대 이하의 시민들도 전체주의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고, 에파 랑 교수는 설명했다. 다시 말해 이 책을 통해 독일에서는 세대를 막론하고 만에 하나라도 파시즘을 옹호할 여지가 있는 단어는 아예 혀끝에 올려서도 안 된다는 암묵적인 원칙이 생겼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 책을 읽고 ‘성별과 인종에 대한 편견, 파벌주의와 국가주의는 어디서 비롯되는가?’에 대해 토론했던 독일의 젊은 세대는 어느덧 아이를 가진 부모가 되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언제라도 되풀이된다.’라는 진리를 가슴에 새긴 청소년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하자 역사에 대한 반성이 사회 전반의 당연한 과정으로 뿌리내렸다. 독일이 끔찍한 과거를 변명하거나 덮지 않고 인정하게 된 저력은 여기에서 나왔다. 한국의 권위주의 교육과 독일의 교육의 차이점은 이 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목차

서문

‘고든’의 사람들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
역사에서 일상으로 건너온 아이들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디어
기괴한 놀이가 시작되다
‘일치단결’이라는 마법의 주문
프랑켄슈타인 혹은 실험쥐
거대한 운동이 된 ‘파도’
열병 앓는 학교
단벌 양복을 입은 남자
큰 외침 속 작은 목소리들
파도 대 파문
레지스탕스의 탄생
외로운 싸움
마침내 발견한 해답
최후의 명령 실험의 끝, 남겨진 몫

해설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토드 스트라써 지음

1950년 뉴욕 시에서 태어난 토드 스트라써는 행복하지 않았던 자신의 학창 시절을 배경 삼아 1979년 청소년 문학 작가로 등단했다. 성장을 향한 아픔과 고민을 진지하고도 유쾌한 또래 언어로 다룬 그의 작품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파도』는 청소년 소설의 세계적 고전이 되었다.

김재희 옮김

중학교 새내기 때 장래희망에 마술사라고 적어냈다가 회초리로 손바닥을 여러 대나 맞은 기억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여러 나라 여러 동네를 기웃거리며 다양한 친구를 만난 것이 꿈 기계를 다시 작동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특히 외국어 능력 덕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아들을 포함한 젊은 친구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외국어는 부지런히 익히라고 권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며, 번역서로는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파도』, 『뒤바뀐 교환학생』, 『복제인간 시리』, 『변신』, 『유기체와의 교감』, 『동물 농장 외』, 『1984』 등 다수 있다.


책속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 p.22

오늘 수업에서 다룰 주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지난 시간 벤 로스는 학생들에게 독일 나치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묘사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커튼을 치고 불을 모두 끈 교실에서, 아이들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장면에 눈길을 모았다.
흡사 가느다란 뼈를 가죽으로 감싼 듯 바싹 마른 사람들. 곧 부서질 것 같은 그들의 앙상한 다리 가운데 유일하게 불거진 부분은 무릎이었다. 넋이 나간 듯한 그들은 섬뜩한 눈길로 이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전쟁 관련 필름을 제법 많이 본 벤 로스도, 상상을 초월하는 나치의 행각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의 장면들에는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보고 또 보아도 그때마다 소름이 끼치고 몸이 떨리는 걸 참기 힘들었다.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벤 로스는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학생들에게 내용을 요약해주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디어 p.51~52

학생들에게 필름을 틀어준 수업 이후, 벤 로스는 뭔가 모르게 께름칙함을 느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왜 그런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필름을 보고 나서 학생들이 보인 반응과 관련이 있다는 것 정도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곰곰 생각해본 끝에 벤 로스는, 자기 안에 남아 있는 불편하고 석연치 않은 기분이 아이들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치의 탄압에 왜 그토록 많은 독일인들이 침묵했는가? 이 같은 사실에 아이들이 강한 의혹과 의문을 제기했음에도, 벤은 자기 또한 그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아이들에게 명확한 답변을 들려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 벤 로스는 스스로 답을 찾아내려 작정하고 퇴근길에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것저것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빌리니 한아름이나 되었다. 그 책들을 품에 안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아내 크리스티 로스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친구들과 테니스 약속이 있어 저녁까지 먹고 좀 늦게 들어온다고 했다. 벤은 때마침 잘됐다 싶었다. 빌린 책들을 뒤적이며 생각을 굴리기에는 아무래도 혼자 있는 편이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벤은 책상 위에 열댓 권의 책들을 펼쳐놓고 한 권씩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시간째 그 일을 계속해도 소득이 없었다. 그 어떤 책에도 벤과 학생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나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벤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들로 복잡해졌다. 학생들이 던진 질문이 엄청나게 까다롭고 어려운 것일까? 그래서 내로라하는 역사가들도 적절한 답을 줄 수 없는 것일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은 비극적인 사건과 관련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시간뿐일까? 혹시 그 일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비밀이 그 사건에 내재해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런 사건이 오직 그 시대에 나치 정권 하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일이며 직접 체험한 사람만 그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일을 몸소 겪은 이들 중 지금까지 살아 있는 생존자들을 찾아다니며 꼬치꼬치 물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기괴한 놀이가 시작되다 p.65~66

“좋아!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실 안을 여기저기 걸어보는 거야. 평소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떠들다가, 내가 신호를 하면 최대한 빨리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지금 훈련받은 그 자세로 다시 의자에 앉는 거다. 자, 어서들 일어나거라!”
자세를 푼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여기저기로 튕겨 나갔다. 아이들의 집중력이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점을 잘 아는 벤은 곧바로 구령을 했다.
“일동 제자리!”
아이들은 마치 의자 빼앗기 놀이를 하듯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아갔다. 다들 너무 서두르느라 서로 부딪치고 허둥대는 소란이 잠깐 있었다. 약간의 비명과 킬킬대는 소리도 들렸지만, 그보다는 자리에 앉으며 의자를 바로 놓는 소리가 훨씬 더 요란했다.
칠판 앞에 서서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벤 로스는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이렇게 소란스러우면 안 된다고. 지금 우리가 어린아이들처럼 장난을 치는 게 아니잖니? 우리는 엄연히 ‘헤쳐’와 ‘모여’ 훈련을 통해 아주 특별한 ‘교실 실험’을 하고 있단 말이다. 다시 해보자. 이번에는 떠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야 해. 그러려면 집중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이 공동의 실험에 몰두하면서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다고. 그럼 모두 준비됐겠지? 어디에 있든지 신호가 떨어지면 곧바로 자기 자리로 달려가는 거다! 자, 모두 자기 자리에서 일어선다!”

'일치단결'이라는 마법의 주문 p.81~82

벤 로스의 표현대로라면 ‘그보다 더 환상적일 수 없는’ 실험이 이루어진 다음 날. 그의 눈앞에는 더더욱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기도 전에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와 자기 자리에 똑바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벤은 잠시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사실 그는 진도를 나가기 위해 몇 권 챙겨온 ‘일본의 군국주의’에 관한 참고도서를 깜박 잊고 차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그것을 다시 가지고 오느라 평소보다 늦게 들어왔다. 차에서 교실까지 허둥지둥 달려오며 아이들이 어떤 난장판을 벌이고 있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아이들에게서는 더 이상 달팽이나 나무늘보 부대 같은 모습도, 또 어디든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고야 마는 장난꾸러기의 면모도 보이지 않았다.
벤이 교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뜨인 건, 일곱 개씩 다섯 줄로 반듯하게 맞춰져 있는 책상들이었다.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는책상 앞에 앉은 아이들 사이에서는 적막이 감돌았다. 더욱이 그 아이들은 지난 시간에 선생님이 내린 ‘지시’대로 꼿꼿하고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른 교실 풍경에 오히려 벤 로스는 당황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황망할 따름이었다.
이 아이들이 지금 내게 무슨 장난을 치는 걸까? 벤 로스는 의문스러운 속내를 감추고 아이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끙끙대는 얼굴도 몇몇 보였다. 하지만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완전히 굳은 표정으로, 마치 밀랍인형처럼 앉아 있는 친구들이 상당수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오늘도 그 환상적인 실험을 계속하는 건지 아닌지 잘 몰라서 그저 어정쩡하게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자, 이를 어떡한다? 그 실험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벤 로스에게는 이게 계속해볼 만한 일인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만큼 쌈박한 경험은 어디서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괴상망측하면서도 너무나 놀랍고 신기한 이 실험을 통해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배워야 할까? 또 교사인 나 자신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벤 로스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는 방금 자신이 속으로 던진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일단 이 실험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래, 좋아!”

거대한운동이 된 '파도' p.108~109

“로리, 드디어 해법을 찾았어!”
데이비드는 밤새도록 쌓았다 부순 수많은 상념과 계획들을 로리에게 털어놓았다.
“축구부에도 희망이 생겼다고!”
“축구부의 희망이라면…”
중계방송을 하듯 로리가 말을 받았다.
“날렵하고 튼실한 수비수 하나, 어떤 방어에도 절대로 굴하지 않고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날쌘돌이 공격수 두 명…”
“에이, 참.”
데이비드는 김새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표정으로 로리의 말을 잘랐다.
“장난 아냐. 내가 어저께 축구부 애들한테 선언을 했거든. 브라이언이랑 에릭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친구들도 다 좋다 그랬어. 물론 그런다고 해서 당장 실력이 늘고 대회에 나가서 우승컵을 따올 수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예감이 아주 좋아. 선수들을 일치단결시킬 수 있는 코드를 잡은 것 같아. 쉴러 선생님도 완전 감동 먹었어. 우리가 진짜 딴 애들 같대!”
“그래? 울 엄마는 무슨 세뇌 교육 같다고 그러시던걸.”
로리의 말에 데이비드는 언짢은 기분이 들어 반문했다.
“세뇌 교육?”
“그래. 엄마는 벤 로스 선생님이 우리를 조종하는 거래.”
“증세가 심각하시군!”
데이비드가 기어코 짜증을 냈다.
“어머니가 뭘 아신다고 그런 소릴 해? 너 대체 어머니께 뭐라고 말씀을 드린 거냐? 엄마 잔소리에 넌더리가 난다고 맨날 치를 떨면서, 넌 왜 쓸데없는 걱정을 끼쳐 드리는 거냐고.”
“나도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어.”
로리의 변명에도 데이비드는 상한 기분을 풀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결국 너도 엄마 얘기에 마음이 흔들린 거 아냐?”
데이비드의 다그침에 로리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내가 언제 그랬댔어? 울 엄마가 그런 걱정을 하더라는 것뿐이야!”
로리의 해명에도 데이비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머니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야? 우리 교실에 와 본 것도 아니잖아. 파도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대체 왜! 아무튼 어른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데는 뭐가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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