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요양원으로 출발하는 ‘나’로 시작되는 ‘이방인’의 이야기는, 훗날 한 애정 사건에 연루되며 그의 복잡한 내면을 투사하는 재판의 형식과 햇빛의 모티프를 근간으로 인간 존재의 암울함에 대해서 피력하는 소설이다.
비극적 상황에서도, 일상을 살고 세계를 끊임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 아래, 묘사되는 ‘나’의 서술들은 그 참담함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묵묵하고 일관되어 결국 소설의 말미에 이르렀을 때, 햇빛 아래 여과 없이 드러나는 본질성, 주인공을 넘은 우리의 ‘본질’에 대해 생각게 한다.
왜 이방인인가?’, ‘그의 잘못은 정녕 살인인가?’ 물을 수 있다면, 우리는 재판에서 그토록 가리고자 하는 진정한 살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이러한 명작을 집필한 카뮈의 세계관에 대해서 좀 더 내밀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이 책은 그러한 카뮈의 대표작인 「이방인」 뒤에 수상 연설문과 강연 내용을 실음으로써, 작가의 세계관에 더 깊숙이 몸을 담그게 한다. 하여, 이미 카뮈의 작품을 접한 독자일지라도, 새로운 카뮈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목차
이방인
스웨덴 연설-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
스웨덴 연설-예술가와 그의 시대
카뮈 연보
작품 목록
저자 소개
알베르 카뮈 지음
1913년 11월 7일 알제 몽도비에서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포도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징집되어 사망한 뒤,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생활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재능을 인정받으며 장학생으로 선발된다. 알제 대학에 다니며 철학을 공부한다. 이 시기 장 그르니에를 만나 그를 사상적 스승으로 받아들인다. 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일생을 괴롭힌 폐결핵 때문에 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기자로서 활동한다. 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여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시지프 신화』 『칼리굴라』 등을 발표한다. 1947년 『페스트』를 출간하고 즉각적인 선풍이 일었다. 마흔네 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만 삼년 후 1960년 1월 4일 미셸 갈리마르와 함께 파리로 가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이두성 엮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파리 고등사회과학 연구원(EHESS) 문학사회학 D.E.A. 취득했다. 이후 파리 1대학 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텍스트 실험집단 <루> 동인이며 <이마고>에서 다수의 인문서 기획 및 번역을 했다.
<서울 아트 시네마> 프랑스 영화 번역가로도 활동하며 에릭 로메르, 클레르 드 니, 장 뤽 고다르 등의 작품을 번역했다.
책 속으로
‘근조’ 소식을 듣고 엄마의 요양원으로 가는 ‘나’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 아니, 모르겠다. (…) 무슨 말인지. 아마도 어제였나 보다.
요양원은 알제에서 팔십 킬로미터 떨어진 마랭고에 있다. 두 시에 버스를 타면 오후 내로 도착할 것이다. (…) 지금으로선 아직 모친상을 당한 처지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장례가 끝나고 나면 모두 다 아는 공식적인 사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
(…) 집에서 함께 살던 시절, 엄마는 종일 말없이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고인께선 종종 생전에 동료들에게 종교적인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고 말씀하셨답니다. 필요한 준비는 돼 있어요. 그냥 말씀드리는 겁니다.”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엄마는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종교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하는 것 같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장의사 인부들이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어요. 관을 닫으라고 할 참인데 마지막으로 어머님을 보시겠소?”라고 관리인은 물었다. 나는 “아니오.”라고 했다. (…) 하늘은 이미 태양빛으로 가득했다. 더위가 빠르게 몰려왔다. (…) 나는 엄마를 이해했다. 이 고장의 저녁은 서글픈 휴식과 같겠지. 그러나 오늘, 사방에 넘쳐나는 햇빛에 전율하는 이 풍경은 비인간적이고 우울했다.
새로운 애인과 친구를 만나는 ‘나’
물속에서 마리 카르도나를 만났는데, 그녀는 전에 우리 회사의 타이피스트였고 한때는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다. (…)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어서, 이렇다 할 일이 생길 틈은 없었다. (…) 날은 다시 미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 봐요, 뫼르소 씨.”하고 레몽은 말을 꺼냈다. “내가 못된 놈은 아닌데 성깔이 좀 있거든. 어떤 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여자는 내 정부였소.” (…) 레몽과 주먹질을 한 남자는 여자의 오빠였다는 것이다. (…) 그는 피범벅이 되도록 여자를 때렸다. (…) 그래서 나의 조언이 필요했다고 그는 말했다. (…) 그는 내가 모친상을 당한 것을 들었다고 하면서, 하지만 그건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 태양의 열기는 모래 위에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바다에 부서지는 햇빛의 파편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 동시에 저 멀리 해변의 맨 끝 쪽에서 푸른 작업복을 입은 두 명의 아랍인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레몽을 쳐다보자 그는 “그놈이야.”하고 말했다.
(…) 레몽이 내게 권총을 넘길 때, 그 위로 햇빛이 번쩍 스쳤다.
엄마의 죽음과 혼재된 살인 재판
그는 대뜸 내가 엄마를 사랑했느냐고 물었다. (…) 내가 권총 다섯 발을 연달아 쏘았는지 물었다. (…) 그는 “어째서 한 방을 쏘고 다시 쏠 때까지 몇 초간을 기다렸나요?”하고 물었다. 다시 한 번 붉은 모래사장이 눈에 선했고 이마에 타는 듯 작열하는 태양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 시간이 지나면서 밤에 편히 잠들기 시작했고 낮에도 잘 수 있었다. (…) 구치소의 저녁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 그는 이제부터 내 사건과 겉으로는 상관없어 보이는 점들을 검토해 볼 텐데, 아마도 그 부분이 사건의 핵심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다시 엄마 이야기를 꺼내리라는 것을 짐작했고, 그게 또 얼마나 따분한 일인지 상상이 갔다. 그는 어째서 내가 엄마를 요양원에 보냈는지 물었다. 나는 엄마를 돌볼 사람을 둘 만큼 돈이 충분치 않아서였다고 답했다. 엄마도 나도, 서로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조차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으며, 둘 다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만족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재판장은 그 일에 관해서는 더 이상 캐묻지 않겠다고 하고는 검사에게 다른 질문할 것이 있냐고 물었다.
(…) “저는 이 사람의 목을 요구합니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조금은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것이긴 하지만, 아랍인을 죽일 생각은 없었노라고 말했다.
(…) 구치소의 부속 사제는 내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 “그렇다면 아무런 희망을 갖지 않은 채 완전한 죽음만을 바라보고 있는 건가요?”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 나는 난생처음 이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에 대해 마음을 열었다. (…) 내가 너무 외롭지 않도록, 부디, 내 사형 집행일에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와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카뮈의 명연설, 노벨 문학상 수상연설문
여러분의 자유 한림원이 제게 허락해 주신 영예를 받으면서, 이 상이 제게 얼마나 분에 넘치는가를 생각할수록 감사의 마음이 그만큼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은, 그가 예술가라면 더더욱,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 예술은 예술가를 혼자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도록 강요합니다. 예술가를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인 진실 아래 두는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의 종교 재판관들이 영원한 죽음의 왕국을 건설할지 모르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일각을 다투는 시간의 미친 질주 속에서 우리 세대는, 국가들 사이에 굴종의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를 회복해야 하고, 노동과 문화가 서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새로이 화해시켜야 하며, 모든 이들과 합심하여 언약의 궤를 재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작가에게 어떤 자격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그와 투쟁을 함께한 동지들과 나눌 수 있는 자격일 뿐입니다. (…) 그러므로 어느 누가 작가에게서 완성된 모범 답안이나 허울 좋은 도덕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 끝으로 여러분이 제게 허락해 주신 이 영광이 얼마나 크고 너그러운지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제 개인적인 감사의 표시로 저마다의 예술가들이 매일 말없이 자신에게 되풀이하는 오래된 그 충심의 맹세를 여러분 모두 앞에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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