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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세계문학 명저

복제인간 시리

by 서연비람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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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불치병에 걸린 30대 초반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이리스는 천재성과 완벽한 교육 환경을 그대로 물려 줄 스스로의 복제인간을 잉태하고 출산하니, 이렇게 태어난 시리는 이리스의 딸이자 일란성 쌍둥이 자매다. 엄마처럼 성공한 피아니스트로 승승장구하는 교육프로그램에 따라 엄격하게 양육되던 시리는, 말을 배우면서부터 주입된 "너는 내 생명"이라는 주문이 실은 자신이 엄마와는 별개의 인격체로 설 수 없게 하는 무서운 족쇄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첫 독주회를 끝낸 뒤 "나는 이리스 젤린의 DNA 가닥에 매달린 꼭두각시에 불과"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찾는 작업은 먼저 엄마의 주도로 만들어진 현재의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가 된다.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와는 다른 존재"라는 한 복제인간의 자각과 분리불안, 참담한 외침은 조만간 인류가 당면할 '인간 복제'의 개인적·사회적 윤리 및 이른바 과학기술 문명의 본질적 문제들을 이제 본격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목차

서문
존재의 원년 쌍둥이 여신의 탄생
첫 번째 유년기 잘 어울리는 합주
두 번째 유년기 이중주
첫 번째 청소년기 불협화음
두 번째 청소년기 파국
두 번째 원년 회자정리
10년 후 홀로 남은 쌍둥이 별
후기 이기적 복제
부록 복제(cloning)의 기본 개념과 인간존엄성의 문제


저자 소개

샬로테 케어너 지음

1950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국제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캐나다와 중국에서 수학했다. 1980년부터 3년 동안 독일 연방정부가 청소년 교육을 위해 지원하는 청소년 재단의 홍보실 보도 담당자로 일했으며, 주로 생명공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게오-비센(GEO-Wissen)』, 『차이트(Zeit)』, 『엠마(Emma)』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리제 마이트너의 생애를 그린 『핵물리학자 리제』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생애를 그린 『천상의 아름다움』, 미래소설 『1999년에 태어난』 등이 있으며, 『복제인간 시리』로 2001년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재차 수상했다. 뒤의 두 작품은 TV 상영을 위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김재희 옮김

중학교 새내기 때 장래희망에 마술사라고 적어냈다가 회초리로 손바닥을 여러 대나 맞은 기억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여러 나라 여러 동네를 기웃거리며 다양한 친구를 만난 것이 꿈 기계를 다시 작동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특히 외국어 능력 덕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아들을 포함한 젊은 친구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외국어는 부지런히 익히라고 권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며, 번역서로는 『아주 작은 차이 그 엄청난 결과』, 『파도』, 『뒤바뀐 교환학생』, 『복제인간 시리』, 『변신』, 『유기체와의 교감』, 『동물 농장 외』, 『1984』 등 다수 있다.


책 속으로

존재의 원년 쌍둥이 여신의 탄생 p.9~10

이리스 젤린이 내 존재를 처음 생각해냈을 때, 그녀는 아마도 지금의 나만큼이나 외롭고 또 절박했을 것이다. 그녀를 떠나보낸 아픈 시간을 견디고 있는 탓인지,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더 그녀가 곁에 있다는 느낌이 생생하다. 혼자라는 사실은 병이 났을 때 훨씬 청승맞게 다가오는 법이다. 그녀도 나도 그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녀는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오랜 세월 시달렸고, 나는 지금 정신과 질환을 앓고 있다.
내가 최초의 인간복제 사례 중 하나였다는 사실, 게다가 이렇게 무럭무럭 잘 자라 어른이 될 때까지 무탈하게 살아남은 종자 중 하나라는 흔적은 겉으로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냥 봐서는 보통 사람과 차이가 없고, 정상적인 사람들과 똑같아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는 분명히 그래 보인다. 아무런 표시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면에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진짜 무서운 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런 공포다. 어둠 속의 공포를 사람들은 오히려 고래고래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자신의 증상을 숨기곤 한다.
지금 내가 기록하려는 건, 그 누구의 것도 섞이지 않은 오직 내 삶에만 해당하는 이야기, 시리 젤린의 이야기이다. 그렇다, 난 최선을 다해 오직 진실만을 기록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진실’이란 또 무엇인가?
그녀가 내게 했던 이야기도 나름대로 진실이고, 한참 후에야 만나서 오랜 동안 내 안에 쌓였던 궁금증을 남김없이 풀어내려 끈질기게 내가 물었던 것들에 대해 내 의학적 ‘아버지’가 답한 것들도 모두 진실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내게 중요하고 정말로 진실한 건 무엇보다 ‘내 기억’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처럼 시시콜콜, 살아온 이야기 모두를 여기에 정리할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 진실이고 중요한 건, 구체적 사실보다 그 이면에서 이리스 젤린의 복제인간인 동시에 쌍둥이 여동생인 나, 시리가 파악하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유년기 잘 어울리는 합주 p.51~53

내가 태어난 다음 해에 누군가가 이리스 젤린을 만났더라면, 그녀를 그저 갓난이를 품에 안은 평범한 어머니로 생각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우리는 분명 어머니와 딸이었다. 쌍둥이 자매는 당연히 동갑이지 다른 세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더욱이 복제의 비밀은 우리 두 사람 세포들 속에 꼭꼭 숨어 있어서, 어떤 이의 눈에도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그건 혹시라도 이리스가 나서서 떠들고 설명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갓 몇 주짜리 젖먹이와 이미 서른두 살이 된 어른이 아주 똑같은 유전자 배열을 갖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대체 그 누가 알 수 있으며, 어찌 처음부터 그 진상을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무한이니 영원이니 하는 개념을 수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의 현실적인 의미에 대해, 우리는 그걸 머리로 이해하거나 몸으로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복제인간의 존재도 처음에는 꼭 그랬다. 이리스 젤린이 그녀의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도 꼭 마찬가지였다. 쌍둥이 여동생을 품에 안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그 아기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때가 더 많았다. 아기의 작은 얼굴을 들여다보면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린 채 아기에 대한 원초적 모성애가 솟구칠 따름이었다. 품에 안은 아기의 편안하고 달콤한 젖비린내를 맡고 있으면 마냥 마음이 누그러지고 한없이 풀어졌다. 헐레벌떡 젖을 빨아먹는 아기의 주먹을 들여다보고 고물거리는 손가락을 살며시 펴면서 맛보는 행복감은, 여느 엄마들의 그것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이리스는 결코 누구에게도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이런 무조건의 사랑은 오래갈 수가 없었다. 특히 이 아이는 분명한 목적으로 태어난 경우라, 그 목적을 이룰 때라야 의미가 있고 심지어 존재할 권리가 있는 셈이었다.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지만, 이리스로서 그 사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복제 딸을 품안에 안고 있는 동안 이리스는 별로 특이한 점을 실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안이 시작되면, 어렸을 적 그녀를 위해 어머니가 마련해 주었던 칙칙해진 밤색 가죽 앨범을 꺼내 자신의 아기 때 사진을 들여다보곤 했다. 사진 속 얼굴 윤곽과 품에 안긴 아기를 꼼꼼히 비교하다 어디라도 빼닮은 구석이 눈에 들어오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곤 했다. 결국 모든 게 잘될 거라고, 그녀는 차츰 마음을 놓게 되었다.

두 번째 유년기 이중주 p.97~99

초등학교 2학년 수업 시간에 자기집 족보를 컴퓨터로 작성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시리는 여기서 ‘아버지’ 란을 공란으로 남겨놓았고, 담임교사는 그걸 굳이 고쳐주려고 했다.
“그러면 안 돼. 이 세상에 아버지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 최소한 ‘연락 두절’ 혹은 ‘부모님 이혼’ 칸에 표시를 해주렴.”
“하지만 나는 복제로 태어났어요. 우리 엄마는 나를 낳을 때 아빠가 필요 없었대요.”
시리는 거리낌 없이 자기 상황을 설명했으나, 이에 대해 아이들이 키득대자 그만 짜증이 나고 말았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아니라, 복제엄마만 있어요. 그게 우리 엄마예요.” “복제…… 엄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니?”
담임교사가 시리에게 물었다.
“그 말은 내가 생각한 말이에요.”
시리는 당당히 대답했다. 같은 반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조용히 하렴!”
담당교사는 아이들을 통제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시리, 그럼 너는 빈칸을 그냥 놔두렴. 우리 프로그램이 그걸 받아들일지, 아니면 에러 메시지가 뜰지 함 보자꾸나.”
아이들 몇이 다시 웃기 시작했고, 시리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참 이상했다.
저녁 때 시리는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고, 이리스는 괜찮다고 시리 편을 들어주었다. 여러 해 전부터 복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는데, 사람들이 바보 같아 아직도 잘 모른다고 했다. 심지어 이런 애들이 유전자를 조작해서 태어나는 줄로 잘못 안다며, 어떤 약으로도 멍청이는 고칠 수가 없는 거라고도 일러 주었다.

첫 번째 청소년기 불협화음 p.136~137

군수님은 다들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셨다. 대개 쌍둥이로 보이지만, 가끔 세 쌍둥이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음료를 손에 들고 쌍둥이 자매나 형제 혹은 가족과 떠들고 있어, 어색하고 멋쩍은 얼굴로 서 있는 열다섯 살 소녀의 존재는 거의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시리는 쌍둥이들이 모인 이유가, 자신들이 이 사회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나름대로 고유한 규범이 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낯선 세계에서 자신은 더욱 외톨이라는 느낌이었다.
진행 순서에 따라 ‘편하게 인사하고 서로 사귀기’를 마친 다음, 무대 위에서는 두 살부터 일흔다섯 살에 이르기까지, 각 연령별 단체 촬영이 이루어졌다. 주최 측 남자 하나가 이제 드디어 열다섯 살 쌍둥이 차례니까 시리도 무대에 오르라고 강권했으나, 쌍둥이 언니가 함께 안 와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며 그녀는 극구 사양하였다.

첫 번째 청소년기 불협화음 p.155

방문이 닫히자 이리스 젤린은 남자 하나 때문에 자제력을 잃었다는 사실에 부아가 치밀고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자신과 시리 사이에 감히 그따위 녀석이 끼어들다니. 그 어떤 것도 그녀와 시리를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더욱이 그런 터무니없는 망상 따위에 놀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시리를 쫓아가는 일은 내키지 않았다. 그녀는 쌍둥이 중 앞에 온 따이우였고 시리는 뒤에 온 케힌데일 뿐이니까. 시리는 금세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을 것이다. 연주회 준비를 위해 그 애는 여전히 목숨을 걸고 연습하니까.
음악은 뭔가를 향한 열망이라고, 엄마는 언젠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나, 시리를 구상할 당시 엄마가 진정으로 열망한 건 무엇이었나요? 정말로 영원한 생명을 꿈꾸었나요? 당신이 작곡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건 특히 현대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 던지는 질문이에요. 오늘 난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물어요. 당신은 왜 날 작곡했어요? A, T, G, C 염기의 화학적 불협 탓인지 그따위 DNA 구성은 내 영혼의 고통이며 당신 영혼에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어요.